Today
Total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Archives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04-20 13:34
관리 메뉴

‡‡ Rod of Asclepius ‡‡

옛 포스팅 From 싸이's Paper - 1 본문

그 외

옛 포스팅 From 싸이's Paper - 1

달의눈물 2008. 10. 26. 01:26

소싯적(?) 싸이월드에서 페이퍼란 녀석을 조금 써 본적이 있습니다.
당시 지극히 감상적인 생각만 해대고
다른 사람의 좀 더 넓은 공감을 원했기 때문에
어디 내놓기도 부끄러웠던 글들은 써내려갔었죠. 문장실력도 엉망인...

싸이월드의 페이퍼란 녀석을 이용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녀석이 곧 문을 닫는다고 하는군요.
너무나 저조한 사용자 실적에 페이퍼 -> 블로그로 옮겨버린다고 하는군요.

뭐 제게 있어 큰 의미가 있는 글도 아니고
현재의 생각, 기분과 많이 다른 글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 때의 감정 및 기분을 서비스 중단의 이유만으로 잃어버리긴 싫기 때문에...
조금 양이 많지만 옮겨놓아볼까 합니다.
읽으셔도 별 재미는 없으시겠지만.. ㅋ

이 인간은 이런 생각도 하고 지내는구나.. 라고 어여삐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금 자극적인 그림이 있을수도 있으니 주의를..;;


[01호] 시작. Innovation - Gray Type I 2004.10.16 03:44



싸이월드>페이퍼
첫 글이다.
 
웹서핑을 하다가 어떤 사이트 하나를 발견했다. (주소는 공개해 줄 수 없다.)
3D로 "그림(!)"을 그리는 곳이다.
사진의 분위기는 퍽이나 많이 우울하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사진의 하나.
 
자기의 눈을 꿰메고 있는 소녀다.
약간의 피. 그리고 꼼꼼하게 박음질된 붉은 색의 실.
무언가 보고싶지 않아서일까?
혹은 단순한 장난일까?
 
일단 그림의 질은 장난이 아니게 "실사"적이다.
이런 기술에 바탕을 둔, 사람의 상상은 잔인하다.
저렇게 눈을 꿰매버린다면 많이 아프진 않을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어두움을 참아낼 수 있을까?
 
그래.. 어디까지나 상상임에 가능한 일이다. 상상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난 위험한 상상을 꿈꾼다. 현실의 한 구석에 일어날 법한 상상을...
그것을 옮겨보고싶다. 풀어가보고 싶다. 한순간의 생각에 지나게 두고싶지 않다.
 
나의 상상 예찬. 1st. 시작...

[02호] Eyeball - Gray Type II 2004.10.16 23:21



여러가지 이야기나 동화에서 "애꾸눈의 인물" 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해적두목"은 검은색의 곱슬곱슬한 머리에 나폴레옹이 쓰던 것 같은, 옆으로 챙이 길다란 모자와 해골무늬가 그려진 검은색 안대. 그리고 나무로 된 의족. [도대체 얼마나 험하게 살아왔으면 몸이 이모양일까..] 어떤 책을 읽다보면 눈을 도려낸다는 고문법도 있었다. 실로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눈은 "뇌"의 일부이다. 발생학적으로 눈은 뇌의 일부에 속한다. 밖에서 보이는 안구만 달랑 있는게 아니라 눈은 뇌와 연결되어 있다. (여러 신경, 그리고 혈관들이 뇌와 안구를 연결하는 "끈"을 만들어 준다) 하후돈같이 화살에 박힌 눈알을 빼낸다는 것 자체가 치명적일 수 있으며, 자칫 잘못하다가는 뇌손상과 내부의 출혈등으로 죽음에 가까운 아주 심각한 증상이 올 수도 있다.
 
이 "3D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그림"을 보고 있자니, 내가 나의 학교에 입학한 후에 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체실습"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실습은 10인~11인이 한 조로 한구의 시체를 맡아 구획을 나누어 피부부터 하나씩 벗겨가고 제거해가면서 인체의 구조를 관찰하는 것이다.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Head&Neck(머리와 목, 번역하자면 그렇다 -_-;) 파트를 맡게 되었다. 머리와 목쪽의 구조물은 상당히 섬세한 손길 - 칼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많이 피곤하다. 피부는 얇고, 그 아래 구조물 (Skin, Cutaneous Tissue, Aponeurisos, Loose connective tissue, Pericranium의 첫글자를 따서 Scalp라고 부른다. 실제로 Scalp는 두피라는 뜻을 지닌다.) 은 저명하게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에, 섯부른 메스질로 자칫 파악하고자 하는 구조물을 날려먹어 조원들의 원성을 듣게 된다. 그러지 않으려면 엄청난 인내심으로 조금씩 피부와 근육층을 얇은 회를 저며내듯 발라내어야 한다. 그만큼 피곤하고 진척이 없는, 답답한 일이기에 "타의반"이라는 수식어가 붙을만 하기도 하다.
 
Head 파트의 일 중에서 안구를 적출하여 그 구조물을 관찰하라는 임무가 있었으므로, 사체 실습이 거의 끝나가던 어느 날, 나는 지하의 해부실습실에서 망치와 정, 그리고 메스를 들었다. 두 눈을 모두 건드려야 하는데, 하나는 눈꺼풀 쪽의 피부를 제거하고 안구를 그냥 빼내는 과정이다. (보통 눈알을 빼는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나머지 하나는 절개된 두개골의 윗쪽에서 접근하여 눈 위의 뼈를 망치로 부숴 눈과 연결된 구조물을 보는 작업이다.
메스의 손잡이 부분을 안구 근처의 틈에 집어넣어 공간을 확보했다. 물론, 그냥 당기면 빠지지 않는다. 안구의 뒷쪽은 뇌까지 이어진 굵은 신경이 있어, 이를 잘라내지 않으면 안구적출이 곤란하다. 그래서 그 벌려진 틈 사이로 수술용 가위를 집어넣어 신경을 잘라내고 눈을 뽑았다.
분명히, 사체의 눈은 위의 사진처럼 탱탱하지 않다. 실제의 눈은 살아있는듯한 느낌이 아닌, 수액(안구방수)이 빠져 쭈글쭈글하게 보이는 형태며, 안구 주위에는 안구를 움직이는 근육이 6개 붙어 있다. 여담으로 안구에 특수한 주사액을 집어넣으면 안구를 좀 더 탱탱한 모습으로 만들어 보존할 수 있다는 교수님의 말씀도 있었다.
이런 일을 해보면 끔찍한 일에 무섭지 않다던지, 간이 커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뭐, 어떤 점에서는 그 말이 맞아들어가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누가 내 앞에서 눈을 뽑아서 저렇게 들고 있다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다면 무서워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람에게서 가장 무서움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눈"인 것 같다. 독기실린 눈, 살의가 담긴 눈, 죽은 빛의 눈, 흐리멍텅한 눈. 그 눈을 보고있자면 그 사람의 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눈이 어떻게 생겼고, 어떤 구조인지도 알고 있고, 그 본질을 알고 있음에도, 사람의 눈을 보고 있자면 여러가지 기분이 들고, 무서운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다 라는 말도 있듯, 눈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어서 그럴까?
 
그런 점에서 눈이 작은 사람은 다른사람에게 공포감을 덜 주겠구나. -_-a
 
Postscript - 객관적인 시각에서 글을 읽기 좋게 쓰는 실력을 길러야겠다.

[03호] 고정관념(Stereotype) - Silver Type 2004.10.20 23:24




사람들은 이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자신의 생각"의 유연성에 대해 생각해볼까?
정말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자신을 유연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가끔 어떤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정말 특이하다" 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특이함" 조차 그 특이한 사람에게는 특이함이 아니다. 일상일 뿐이고, 익숙한 사실일 뿐이다. 우리가 놀랄 수 있는 것은, 그 "특이함"이 자신에게 없는 것이거나 단지 그것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기 때문에, 혹은 자신이 할 수 없는, 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오늘 생각해 볼 것은 "할 수 없다"고 믿는 생각. 그리고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생각이나 행동을 배척해 버리는 태도" 까지이다. 정의라는 것의 특성이 그렇듯, 한마디로 어떤 현상을 완전히 표현한다는 것은 상당한 욕심이다. 단지 다루고 싶은 점에서 그 특성을 부곽시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정의라 할 수 있을것이다. (적당한 합리화라고 할까나? ㅎ)
 
병원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자연의 가호를 받아 무식하게 건강한 사람이거나, 충분히 삶을 살지 않은 사람. 그리고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 정도일 것이다.(애도) 병원은 사람이 아프면 당연히 찾아야 할 곳이며, 자신이 가진 병을 치료한다는 것 뿐 아니라, 그것의 예방과 상태보존(난치병일 경우). 그리고 최근에는 삶의 질을 위한 방문의 의미도 크게 부곽되었다.
 
그렇다. 병원은 딱딱한 곳이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느껴왔고, 직·간접적으로 그렇게 배워왔다. 일단 가면 아프고 (주사는 정말 딱 질색이다.), 병원 자체의 분위기는 정말 병을 "낫게" 하는게 아니라 더 "아프게" 될 것 같다는 느낌조차 받게 한다. 병원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흔히 볼 수 없는 경우며,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은 병원을 찾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ㅎ
 
순서를 부여받고, 진료실에 들어간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는 비릿한(?) 웃음, 혹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채로(이 표정은 푸른 색을 연상시키는 느낌이 든다.) 환자를 맞이한다. 안그래도 환자는 아파죽겠는데, 혹은 다른 이유로 심리적으로 불안한데, 이런식으로 의사를 마주하게 되면 저 의사라는 사람이 나의 병을 고쳐줄 것이다.. 라는 생각보다는 "앞으로의 치료"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나는 병원에 많이 가 본적이 없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저 "의사"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면서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까, 저 사람의 미소는 어떨까? 저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까.. 라는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은 별로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정말 저 의사와 특별히 아는 관계가 아니라면, 내가 "기계"에게 치료를 받고 있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 두번 병원에 가고 치워버릴 경우면 더 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의사를 봐야 할 경우엔 그만큼 저 사람을 대할 경우가 많아지고, 다른 모습을 보게 될 확률도 더 높아진다.)
 
자. 의사는 환자에게 무미건조한 질문을 한다. 전엔 몰랐지만, 그 질문의 형태도 모두 정해진 것이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더 실망하게 된다. 정말 병의 치료에서 중요한 점은 뭘까? 의사와 환자의 신뢰 속에 이루어지는 "협동" 아닐까?
아직까지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너무 멀다. 카운셀링이 많은 비중을 이루는 "정신과" 진료도 마찬가지다. 다른 과보다 훨씬 나은 편이긴 하지만,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의사가 정말 의사가 되는 순간, 나는 의사, 너는 환자라는 근본적인 생각이 박혀버리는 것 같다. 정신병동에서 실습하는 PK들은 환자와 탁구도 치고, 이야기도 들어주고, 같이 잘 논다.(-_-;) 하지만 의사가 되고나서,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진료실에 들어앉아 진료를 하게 되면서, 그런 광경을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분명, 의사는 권위적이다.
하지만 그것 자체는 의사의 "능력"에 대한 권위에 한정되어야 하지, 그사람의 인간적인 가치에서 그렇게 정해져버려서는 안된다. 의사의 능력을 신뢰하고 따르는 환자는 있어야 하지만, 의사의 권위에 눌려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환자는 독재자의 지배를 받는 시민과 다를바 없다.
 
이걸 모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몇몇 불가항력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을 제외하고)
그래서 환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는 사람도 예전에 비해 많아진게 사실인거 같다. 의료봉사 같은 것은 직접 환자와 부닥치고, 손도 잡아보고(정서적 교류라는 측면에서 이런 접촉은 상당히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단, 치한소리 듣지 않게 조심만 하면 -_-;;), 가까이서 침튀기며 이야기도 할 수 있을 때, 환자와 의사는 그 수직적 관계를 청산하고 수평적으로, 서로가 필요해서 만나게 된 "인연"을 이룰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진료실에서 의사의 책상을 사이로 한, 의사의 의자와 환자의 의자의 거리는 너무 멀다. 왜 "벤치" 사진을 첫 화면에 뒀는지는 눈치 빠른 사람은 이해할 수 있을것이다.
 
그래. 그 공간을 없애고 같은 벤치에 의사와 환자가 앉아 대화하면서 진료하는 건 어떨까?
 
의사야 부끄러운 것도 없고(없어야 하고) 환자를 보기보다는 병을, 돈을 봐왔으니 점차 안면이 차갑게 굳어버리게 될꺼다. 뭐, 환자를 좀 배려해줘서 환자앞에서 미소를 짓고 웃음을 짓는다 해도, 정말 그건 부담스러웠다. 뭐랄까.. 싸구려 웃음 같은 느낌이 들거든..
환자는 부끄럽다. 나도 병원에 장기 진료를 받으러 다니기 떄문에, 아직도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를 말한다. 뭐 조금 잘못한 점 있으면 된통 잔소리듣고(잔소리라기보단 고함에 가까웠다.) 단순한 검사 결과 받기 위해서 들어가면 "이번엔 이런이런 결과 나왔고, 약은 어떻게 쓰겠다. 다음에 와라." 이 소리 듣고 나온적이 대부분이다. 별 볼일이 없는 이상은 이런게 한계였고, 정말 1분도 안걸렸다. 이렇게 하루에 몇명의 "손님"을 볼까? ㅎ
 
서로가 서로를 마주보는 관계는 상당히 어색하고 불편하다.
뭐, 선이나 미팅에서도 마주앉는거 보다 약간 비스듬히, 혹은 곁에 앉는게 덜 부담스럽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본인은 그런거 아직 한번도 못해봤다. ㅠ_ㅠ]
 
마주보는 관계보다 곁에서 같이 걸어가는 관계...
하지만 그런 것 생각해볼 수 있는 생각의 유연성은 얼마나 될까?
나의 경우만 하더라도, 나 역시 내가 의사자격증을 따고, 언젠가 진료실에 앉아서 진료를 할 때, 환자와 나란히 앉아서 커피라도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 상상을 할 수나 있을까?
고정관념이겠지.. 그것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게 형성되기 전에, 그것의 폐혜를 느껴보고, 바꾸도록 노력하는것.. 이 아닐까?
 
난 병을 치료하는것보다 사람을 치료하고 싶다. ㅎㅎㅎ
 
그리고 또다른 생각 하나.
 
카메라는 SLR(커다란 카메라 생각하면 될것임..). 사진강습을 듣기 때문에, 돈을 모아서 카메라를 하나 살까 싶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찾아보고, 카메라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면서, SLR 카메라에도 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DSLR - 보급형 SLR 카메라를 눈에 담아뒀었다. 캐논의 EOS 300D, 그리고 니콘의 D70. 이 둘을 담았었는데, 결국 나는 캐논 EOS 300D가 맘에 들었다. 왜냐면 바디의 색깔이 은색이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으로 보기엔 훨씬 보기 좋았다.) 하지만 이것이 "검게" 칠해진 기종, 동일기종임에도 불구하고 10만원이나 비싼것이다. 염료의 값이 그렇게 비싼가? 왜 그런가 알아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검은색을 좋아하고, 그 검은색은, 좋은, 고급, 고가의 카메라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10만원이나 더 주고 그 검은색 카메라를 사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단지 다른건 색깔뿐인데 말이지...
 
무척 한심한 일인데. 이것도 그런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도 검은색은 칙칙하고, 정말 무겁다는 느낌이 드는데, 단지 그게 비싸보인다는 이유로 그것을 산다는건 상당히 "어리석은" 것 같다.
 
나는 얼마나 내 고정관념에 묶여 있을까?
스스로가 알아채지 못하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 그리고 바꾸기 싫은 생각들에 이런 생각이 많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다른 생각을 비판해 볼 수 있는 것도, 내가 그 생각에 "발만" 담궜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완전히 빠진 사람. 혹은 내가 그렇게 되었을 때, 초행자에게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그런 생각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할것 같다.
 
왜,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잖아. ㅎ 고정관념덩어리인 어른은 아이의 그 "자유로운" 행동에서 행동을, 사고의 유연성을 많이 배워와야 할 것 같다. 다행인 점은, 어른이니까 그런 배움, 뉘우침이 가능하다는 점이겠지?
 
반성하자. (꾸벅)

[04호] Truth - Metal Silver Type 2004.11.03 17:18



세상을 살면서 때로는 모르는게 약이 될 때가 많다.

차리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변화할 것은 없었을테니까...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본질을 깨닫는 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소유욕, 즉 집착을 낳게 된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과 그 마음까지도 말이다.

 

점점 커가면서 "돈"에 대해 알고, "사회생활"에 대해 알고...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어떤것이라도 처음엔 무척 많은 기대를 하고, 접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모든게 상상대로 그렇게 좋았던 같이 느껴지진 않게 된다. 돈의 풍요함을 알게 되지만, 과소비나 모든 가치가 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보면 돈이라는게 무섭다. 하지만 가지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이 돈이다. 사회생활 초년에는 사람과 그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무척 많은 기대를 한다. 멋진 선후배 관계를 형성하려는 기대도 하고, 멋진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많이 한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좋지 않은 경우를 많이 느끼게 되고, 계속 부딪치면서 결국 느끼게 되는 건 "외로움"인 것 같다. 학교시절의 친구(대학교 제외)가 가장 믿을만한, 솔직할 수 있는, 이 험난한 세상을 같이 헤쳐나갈 친구가 될 수 있겠지만... 그들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사랑.. ㅎ 말이 필요 있을까? 좋을땐 한정없이 좋지만, 어느새 자신은 사람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가득찬 병자가 되어버린다. 건강한 사랑, 행복한 사랑을 바라지만 언제나 그렇지 않은게 현실이고, 진실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에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내 짧은 대학생활동안이지만..]

나 역시 저 모든 가치들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해왔었다. 사람도 무척 많이 믿으려고 노력했고, 돈에 구애받지 않도록 아끼고 쓸 곳에만 썼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고, 잘해주려고 노력도 했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Positive Sign에서 Negative Sign으로 바뀌어버린다.

세상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여.. 결국 자신으로의 비판으로 끝을 맺는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정말 맞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순수함에 가득 찬 아이들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다. 지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나의 위치는, 그런 아이들보다는 오히려 부모쪽에 점차 가까워지지 않는가...

 

사회에 대한 기대. 그리고 진실.

역사에 대한 기대. 그리고 진실..

기대.. 진실..

기대.. 진실...

 

그리고 또 기대하고, 또 진실을 알게 되고, 또 상처받는다.

 

한 사람이 태어나 유년기를 거쳐 험난한 20대(분명, 10대에서 이어진 불안정함이 이곳까지 오는건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30대, 40대..

점차 어른이 되어가면서 웃을 수 있는 건, 그 수많은 상처를 덮을 수 있는 어떤 경험, 혹은 그런 강한 마음이 있기 때문 아닐까?

 

진실은 가슴아프다.

하지만 그 진실은 마음을 강하게 만들어 준다.

나약하다고만 생각하던 자신이 어느샌가 강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지만, 가장 정직하고 옳은 것이 진실..

 

다만, 아쉬운 건 사회나 다른 환경이 너무나 불안해서 그 진실이 정직하지 않을때가 있다는 것이다. 헛된 걱정을 하게 될 때도, 그리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 채 점점 나쁜 방향으로 흘러들어가게 될 때가 있다..

 

진실다운 진실을 믿기 위해선 거짓말 탐지기가 있어야겠지?

 

신에게 감사해야 할 점이랄까?

사람에겐 "이성"이라는 거짓말 탐지기가 있으니까..

 

거짓진실이라는 존재를 한대 후려칠 정당성을 마련해주는 심증을 이성이라는 녀석이 만들어준다. 그러면 그녀석은 낑낑 거리겠지?


[05호] Destiny [사랑] - Pink Type 2004.11.07 22:28




운명. 운명의 상대.

그대는 운명이라는 것을 믿는가?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그런 자신의 반쪽, Soul Mate(영혼의 동반자)가 있음을 믿는가?

 

숙명적인 사랑.

반드시 만나게 될 사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조합. 인연의 끈 속에서 오직 단 하나, 단 하나의 존재가 자신과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는가?

자신의 약지에 묶여 있는 붉은 색 실이 보인다면, 그 실을 조금씩 조금씩 당겨 그 실이 묶여져 있는 곳으로 다가가보자. 그 끝에는 자신과 똑같이 약지에 붉은 색의 실을 묶고 있는, 자신과는 다른, 혹은 자신과 똑같은 어떤 존재가 미소짓고 있을 것이다. 평생을 함께하게 될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언젠가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나게 될 것이고...

지금 헤어진 인연이라도 정말 그게 인연이고, 운명이라면 다시 웃으며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절망하지 말라. 지금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다 하더라도... 결국 그대는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대 스스로가 그 운명의 상대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자격이 있는 자만이 그 운명을 소유할 수 있고, 함께 공유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세상을 살다보면 표면적인, 가식적인 사랑, 혹은 그런 관계에 의해 상처받는 일이 허다하다. 그리고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저 사람은 나의 운명의 대상일 것이라고 집착하는 사람...

그 집착 놓지 못해 세상을 등지는 사람...

피꽃을 피우고 마는 사람...

 

전부 나의 모습이고, 내가 생각했었던 모습이다.

운명이라는 핑계 아래 다른 이를 구속해서는 안된다. 그때부터 이미 그 인연은 운명적인 만남이 아닌, 운명적인 "악연"이 되는 것이다...

 

그대, 힘든가?

꿈에서도 잊지 못할 그 사람때문에 가슴이 아픈가...?

보고 싶어 죽을 것 같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그대가 아직 고백하지 않았다면, 당장 달려가서 고백하라...

사랑도 운명도... 용기있는 자가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돕지 않는 자에겐 신도 미소지어주지 않는다...

 

헤어졌는가? 어쩔 수 없이 눈물 머금고, 그 사람을 보내줘야 하는가?

참아라. 좀 더 멀리 바라보아라...

그 사람이 당신의 인연이라면, 결국 당신 곁으로 돌아 올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대는 더 좋은 인연을, 진정한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물론 다 내 생각일 뿐이다. 나의 상상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아직 세상을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한 햇병아리의 발악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겪고 있는 열병치례에 대한 합리화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것이다. 나의 운명의 상대가 있을 것이라는 것.

처음이라고 해서, 그래서 잊을 수 없다고 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가능성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정말 바보같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대여.. 그대의 약지 손가락에 묶인 붉은 색의 실을 주의깊게 살펴 보라.

운명이라는 것은 시도때도 없이, 정말 어이없게 다가오기도 한다.

가장 싫어했던 사람을 가장 사랑하게 될 수도 있고...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그대의 동반자일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어떤 선택이라도, 그대 스스로가 한 선택을 존중하고, 망설이지 말라.

운명을 실은 기차는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도전하라. 좌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운명을 믿는다.

그렇기 떄문에, 내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강하게 하여 어둠속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 여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같다. 언젠간 내게... 그런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노력하자. 나를 위해서, 나의 반쪽을 위해서...

 

Ps. 친구에게 들은 우스갯소리 하나, "5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그래. 공부하자. (자신의 일에 몰두하자...!)

[06호] Warmth (온기) - Type Brown 2004.11.15 00:59



어느 쌀쌀한 가을 밤,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얼마나 추울지 생각 하지 않고 무작정 나온 외출이어서 나의 손은 점차 감각을 잃어갔다.

내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

나의 동행의 호의에 보답할 겸,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따뜻한 캔커피 2개를 샀다.

하나는 동행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다지 캔커피를 먹고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것을 손에 들고 길을 걸었다. 따뜻하게 데워진 캔커피는 임시 손난로가 되었다.

그렇게 얼마간 걷고, 나는 동행과 헤어졌다. 각자의 집으로...

또 그렇게 얼마를 걸었다.

내 손엔 여전히 캔커피가 들려있었다.

집에 가서 먹기엔 귀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캔을 따고 커피를 마셨다.

점차 캔은 차가워졌다.

내 손에 많은 열을 전달해주고 내 손의 따뜻함만큼의 온기밖에 남아있지 않던 캔커피는

그것의 내용물이 나의 입 속으로 이동함과 동시에 급격히 식어버렸다.

차가웠다.

금속은 열 전도성이 좋으니까 빨리 식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쓰레기통이 띄지 않았다. 아무데나 놓고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차가운 캔을 들고 걸었다.

따뜻했던 캔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차갑게 변해버린 캔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 손은 아직 따뜻했다. 그래서 그 캔을 꽉 쥐었다.

내 손의 온기로 그것을 따뜻하게 데워주려고...

차가웠던 캔은 점차 온기를 띄기 시작했다. 반면에 내 손은 조금 차가워졌다.

어느새 내 발길은 대문 앞에서 멈춰있었고, 그 캔을 버려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올라가서 쓰레기통에 고이 놓았다.

뚜껑이 열리고, 내용물이 없어진 캔커피...

내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뒤돌아본 캔커피에게서는 갈색 고독함이 느껴졌다.

그렇게 캔은 또 식어가겠지...?

 

내게 온기를 전해주던 존재는 언젠가는 식게(지치게) 될 것이고, 그 보답.. 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나의 온기가 그 존재에게 언젠간 전해지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에게서 도움을 받고, 나도 모르는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겠지. 양철캔의 차가움, 손에 전달되는 한기(寒氣). 그조차 견디지 못할 인간이 되고싶진 않다. 내게 도움준 모든 이에게 나도 언젠가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싶다.

설령 나라는 존재가 다른사람에겐 먹다 버린 캔의 존재밖에 되지 않을지라도... 그 손에 쥐어있던 순간, 내가 그사람의 손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순간을 잊지 않겠다. 그리고... 내가 그 손에 있으면서 느낀 조금의 온기... 잊고 싶지 않다.

 

가을은 갈색 계절. 갈색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선선하지만, 따뜻함이 가득 묻어나는 계절..

성숙한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가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PS. 개인적으로 저 커피마시는 아저씨의 인상이 조금은 더럽게 고독하게 보인다.


[07호] Friend (벗) - Type OrangeYellow 2005.01.17 22:52



친구...

 

내겐 많지 않지만, 내가 마음을 준 친구들이 많았고..

 

드물게나마 내가 마음을 받아 본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받기보단 주기만 한 경우가 많았던것 같다. 나의 삶을 돌이켜보면...

 

친구.. 라는 문제에 대해, 명제에 대해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래, 내가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 있을 때 부터 생각해오지 않았을까?

 

중학교때는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나에게 친구는 두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정말 편안하게 대할 수 있는 친구. 그리고 내가 신중하게 대하는 친구.. 이렇게 두 타입으로 친구를 대했고, 그 후자가 많았기에 나는 꽤나 불편한 삶을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속박해가면서...


한때 후회해 본 적도 있다. 스스로가 다른 이를 편하게 대하지 않으면... 결국 나 스스로가 외롭게 된다고. 진정한 친구를 사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 생각이 옳았던 것일까? 나는 지금 내가 가장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친구... 를 생각해보면

내가 서스럼없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그리고 편히 인정받을 수 있는..

내가 좋아하기만 하지 않는.. 나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

그런 친구가 내게 있다는 것 자체가 복이다. 지금의 나로썬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친구를 두 부류로 나눠갔던... 그 생각이 발전해온것일까...

몇몇 친구는 내가 존중해주고, 좋은 말만 하는게 더 좋은 사람도 있다. (증호군이나 규현군 같은..) 그 사람들과는 그렇게.. 그냥 "이렇게도" 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 꼭 욕하고 막말하면서, 그런 와중에도 마음을 억지같이 드러내는.. 그런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서.. 이 친구들과는 이렇게 대하는게 더 익숙한가봐. 아마 지금 그런 "형태"를 바꿔버리면 내가 그들에게 다시 익숙해지는데 얼마만큼의 시간이 더 걸릴까... ㅎ

알지 모르겠지만, 너희들의 그 모습을 내 마음에 담은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어가. 쉽게 바꿀수 없는것... 같다. 그걸 바란다면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겠지.. 하지만 인정해 줄꺼라고 믿어. ㅎ 수많은, 그리고 다양한 인연의 끈 중에서 이렇게 "존중" 하고 싶은 관계도 있을꺼라는 것을 알꺼라고.. 믿고 있거든 ㅎ

결코 "마음을" 풀어준다고 해서.. 친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닌거니까.

 

또다른 한 부류. 마음껏, 원하는만큼 말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대엽군이나 성웅군.. 이런 친구들

이미 형성되어 버린 습관.. 때문일까? 깍듯하게 대해주긴 힘들지만..

이들 역시 나의 소중한 친구고...

나의 편한 친구를 만들기 위한 "시간 속에서" 남은 몇 안되는 친구들중의 일부다.

 

이제는 어떤 친구라도.. 같은 "사랑의 색"으로 그들을 대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젠 친구라는 관계의 "시작"이 힘듦을 느끼고 있다.. ㅎ

그렇게 늙은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마음을 닫아놓은 것도 아닌데...

 

이젠 마음속에 "친구의 빛"을 만들기가 힘든거 같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하면서 점점 변해가는 나를 느낀다.

냉정하고... 자기 속만 챙기려고 하는 그런 사람으로.

 

난 아직도... 내가 "소박한 꿈"을 꾸고 있다고 믿는다. 예전에 들었던.. "소박한 나"라는 칭찬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내 마음속의 모든것을 열어줘도... 믿을 만한 친구가 만들어지기 힘든걸...

예전의 "친구"의 흔적을 제하면.. 내게 정을 느끼게 해 줄, 내가 정을 줘야할 그런 존재가..

 

있는줄 알았어.

 

힘들었지..

 

오늘 안동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도..

마음을 열어둔다는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만..

어느순간, 이제 더이상 "마음을 열어둔다"는 명제에 충실해지는게 스스로를 상처입히는 행동밖에 되지 않을꺼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젠 상처받기 싫어.

내가 선택한 외로움은 괜찮아. 하지만 실망때문에...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나에게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배신같은 외로움은 이제 더이상 싫어.

오늘 내가 흘린 몇방울의 눈물이... 그 사실을 깨닫게 해 준거 같아.

지금 내게 남아있는 친구... 그 소중함 알아.

하지만 이제 더이상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도... 그들에게 내 모든걸 줄 수 있을것 같진 않아.

엄밀히..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들기 힘들어지겠지? 점점..

더이상 실망 안하고, 더이상 외로워하지 않을래.

언제든 나에게서 내가 다른이들에게 느꼈던 그런 "배신감"같은 외로움을 남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진 않아.

 

난 바보.. 지만

내가 받은 아픔을 주고싶진 않아.

 

 

...

왠지 허망한 글을 써버린것 같다... 오랜만에 쓰는 글인데도.

 

여.. 친구들 언제 같이 술한잔 하려는가?

주고받음을 마음껏 나눌 수 있는 그대들이 있어서..

내 마음속 한편에는 언제나 따뜻함이 존재하고 있어.

그대들은 내 삶에 있어서 하나의 목적이기도 해.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고..

그대들을 알게된 사실 자체가.. 내 삶에 주어진 하나의 큰 축복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고맙다. ㅎ


[08호] life (생명) - Type Brightskyblue 2005.02.25 00:37



싸이월드>페이퍼

살아있다. 죽어있다..

이를 실감할 수 있을 때가 살아가면서 얼마나 될까..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삶 앞에서..

그 소식에 귀 기울이고 있는 자신은 죽은 존재인가 산 존재인가...

살아가면서 죽음을 실감하는 때는 그렇게 많지 않다.

생명을 위협받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죽은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죽은 모습을, 死者의 모습을 볼 수는 없을테니...

흔히 스너프(Snuff)라고 하는 시체에 관련된 컨텐츠를 볼 때...

사람들은 역겨움을 느낀다. 오싹함 보다는 역겨움...

하지만 그런 경우에 의해 자신이 죽으리라는 가능성은 배재해 둔다.

삶과 죽음의 인식 사이에 강한 경계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고 오는 길.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갈아타고...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걸었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살아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감할 수 없다."

그냥 있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것인데, 이렇게 생각하고, 먹고, 자고... 웃고 즐기는 것..

이 모든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것인데, 살아있다는 증건데...

죽지 않았다는 것,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인데..

실감나지 않는다.

이 넓은 우주 공간에.. 나라는 존재 하나가 있고, 나라는 존재 중심으로 모든 정보가 수용되고..

그리고 그것을 판단한 나는 감정을 느낀다. 행동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내가 이 세상에 없다면,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이 현실 세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다면

내 의식은 어디로 갈까? 나는 무엇을 느낄 것이며..

내가 없어진 이 세상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살을 결심하며 이런 생각을 하곘지...

내가 느끼기엔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정작 그 대상이 자신이 되면? 자신의 존재가 소멸된다고 생각할 때..

혹은 그렇게 소멸되고 나서, 다른 이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세상은 아무 변화없이

흘러온 그대로 계속 흘러간다고 생각 할 때..

나라는 존재는 정말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욕망, 꿈... 그리고 기억들..

무엇이 남게 될것인가?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다른이가 자신을 기억해주는 그 일들을..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다면...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깊고 넓은 호수 가장 아래에 가라앉아있는 돌맹이같은 나의 존재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왜" 살아가는지, 무엇때문에 그렇게 아둥바둥거렸는지..

한심해지곤 한다. 무척...

 

나는 죽어서도 "넋"이라는게 있어서...

그 자신의 죽음으로부터 모든게 끝나기 보다는

넋이라는 것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느끼고, 행동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곘다.

가장 간단한, 보편적인 신앙.. "혼"

이게 없다면, 이런 희망(사후의) 조차 없다면...

도대체 인간이라는 존재는 왜 "열심히" 살아가는걸까?

자기만족?

그것을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은 뭘까?

아직도 내 가슴속엔 생명의 불이 타오르고 있겠지만...

이 "어마어마"한 삶을 느끼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있는 나로써는..

죽음이라는 존재가.

실감할 수 없는.. 그런 "단어" 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혹은 좀 더 "죽음"을 가까이서 느끼게 되면..

생명의 "소중함", 나 자신의 생명의 소중함을.. 나 자신의 삶을..

좀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될까?

답은 없다. 좀 더 살아봐야 할 것 같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걸어가는 수 밖에...

 

PS. (그래. 우리 인간들은 아무 생각없이 오늘도 다른 존재를 탐하면서 즐기고 살아가지.. 동물이건 식물이건, 그들은 살아있었고, 그들이 아니었다면 인간은 굶어죽었을거야. 하지만 똑같은 생명인데, 똑같은 죽은 존재인데... 끔찍하다는 것을 느낄 수 없게 된 인간의 둔함... 물고기의 껍질을 벗겨 얇게 저며내서, 1년동안 자라온 쌀알들을 벗기고, 물에 넣고 삶아.. 그들을 서로 얹어 보기좋게 장식한 인간이라는 존재의 잔혹함. 그러면서 "사람을 먹는" 어떤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에 앞서 혐오감을 느끼지. 생각해봐. 우리가 마찬가지로 껍질이 벗기워져 얇게 져며저 다른 존재의 입안으로 들어갈 요리따위에 불과하다면...

ㅎ.. 하지만 우리의 눈 앞에 저건 단순한 유기물 덩어리에 지나지 않아. 인간의 기준으로 생명이라는 것은, 모든것이 "소중하고" "지켜야" 하는 것만은 아닌가봐. 이런 생각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해치고,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니까.. 죄 짓는 삶이 아닌, 당연하다는 듯의 삶을 살고 있으니까...)


[09호] Living (삶) - Type Chaos Gray 2005.02.28 01:32



달콤한 케이크. 나는 케이크를 좋아한다.

나도 삶이 달콤한줄로만 알았었다. 그리고 그렇게 상상해 왔었다.

내 꿈은 소박했다..

안정적인 직업 얻어서, 좋은 사람 만나서 아들딸 낳아 행복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는게 내 인생의 목표이자 꿈이었다..

순박했었나?

죽음을 느껴보고, 죽음이라는 것의 실체를 생각해보고...

한동안 마음은 백지가 되었었다.

아니.. 백지라기 보다는 무언가 생각할 것이 가득 차서, 복잡해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된 것 같았다.

삶은 유한하다. 당연한 이치다.

이 유한한 삶동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뭘까?

이제껏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온걸까..

정말, 말초적인 무언가만을 위해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행동했었지, 정작 진지하게 삶을 생각해본적은 얼마나 되었었나...

생각해보면 별게 아니다. 내가 알던 사람들은.. 정말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내가 실감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무언가 특별한 삶은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생각 하나하나를 다 들여다 보지 못하니까.. 그것이 평범한 삶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스스로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철없이 행동한 나...

사랑도 경험해봤고, 상처도 입어봤다. 죽고싶은 마음도 들었었고,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이 모든것이 내가 이제껏 살아온 기간의 1/10이라는 세월동안 모두 일어났었지.

철이 없었나?

아직 세상 물정을 몰랐었나..

쓸데없는 것에 얽매이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혹은 스스로를 너무 믿어서..

많이 후회했었다. 많이..

 

 

한 발짝, 정도에서 벗어났었나보다.

내가 스스로에게 많이 물러졌었나봐.

스스로에게 충실하지 못했던 그 기간만큼을.. 앞으로는 내 자신을 위해 투자해야해..

가장 우선 순위는.. 나를 발전시킨다는 생각, 이것으로 내 삶을 살아가자..

내 삶의 색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뒤죽박죽.. 엉망이었을지도 모르지.

내가 원하는 색을 낼 때 까지.. 열심히 노력하자.

한번뿐인 삶. 내가 할 수 있는 "모험" 이란 기회 조차도.. 내겐 축복일테니..

나를 갈고 닦자. 열심히.. 열심히...

다시 한번.. 나를 위해 열심히 살아보자.

[10호] Mirror (거울) - Type Skyblue 2005.03.21 01:55



차를 타고 오다가 생각해봤다.

얼마전에 친구가 놀러와서 사진을 찍어줬다.

잠깐이나마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을 봤는데..

솔직히 말하면 많이 실망했다. 평소에 보던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거울을 많이 본다.

머리 정리할때나... 머리를 감고 나와서... 혹은 심심하면 한번씩..

거울을 바라보고 사는 건 아니지만, 거실에 떡하니 커다란 거울이 버티고 있어서..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곤 한다. 별다른 표정없이 서 있을땐.. 거울속의 내가 마음에 든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의 한 부분일까?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가끔씩 자신감을 얻기도 하니까.. (-_-;)

그리고, 이곳 자취하는 곳이 아닌.. 내가 진짜 사는 곳의 거울도.. 나를 다른 모습으로 비추어준다. 그곳과 이곳(대구) 의 거울 속 내 모습은 또 다르다. 이곳에선 없는 자신감, 따뜻함이... 나의 집에서 본 거울속에는 있다.

거울이란 신기한 존재다.. 라는 명제를 일상속에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거울 사이에 내가 들어갈때, 또한 엄청나게 신기한, 그리고 신비로운 현상도 볼수있게 된다. (실제로 서로 마주보는 거울 사이에 비춰진 상은.. 무한하게 보인다. 그게 어디까지 이어질까? 일설로는 그런 상황에서는 영혼도 비춰질 수 있다고 한다. - 오싹 )

거울의 의미는 다양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미는...

거울은 무언가를 "비춘다"는 것이다.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유용한 도구.

진실의 도구... 거울 ^^

외모만이 거울에 비치는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거울에 비친 상은 진실과 다르다.

거울에 비친 상은.. 보는 사람의 마음이 반영된다.

슬프고 괴로울때.. 비치는 거울속의 내 모습은 스스로가 보기에도.. 불쌍하고 부끄러운 모습.

기쁠때 비춰지는 거울속의 내 모습.. 하루를 기분좋고 활기차게 하는 원동력.

 

거울 앞에 서서 부끄럽지 않게.. 나를 만들고 싶다.

진실의 거울 앞에 섰을때.. 나는 어떻게 비춰질까?

흉악한 사람,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거울속 자신의 모습이 추하게 비춰지겠지?

비록 외모가 볼품없다 하더라도.. 마음이 아름다운사람은... 거울속 자신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게 비춰지겠지?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당연한... 선택이겠지만, 헤헤;

거울을 보며, 좀더 스스로를 갈고 닦아 나가야지..

[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다른 성별로 비춰진다는 것. 이런 설정 매력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상상을 많이 한다. 비록 지금의 내 모습이 별로 안좋다 해도, 거울속에 비친 모습은 조용하고 편안한 모습의 다른 어떤 사람, 멋진 이성이라면? 그게 나의 내면, 혹은 나의 짝의 모습이라면...! 거울 보는것이 더 즐거워지겠지? ^^]

[11호] Panic (공황) - Type PaleWhite 2005.04.30 22:59



상상.

무서움..

 

공황은 Panic, 극도로 불안함을 말한다.

Fear(두려움)나 Agitation(긴장)이 이보다 더 낮은 정도의 두려워하는 인간의 감정을 나타내는 말이 되겠는데, 공황은 이보다 더 심각한 수준의 장애를 의미한다.

(정확한 사전적, 임상적 의미를 참고하려면 여러 사이트를 방문해보시길. http://www.okpanic.co.kr/ - 이런 사이트도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무언가를 생각할 시간도 많아진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한다. 즐거웠던 어떤 기억, 가슴을 뛰게 하는 무엇에 대한 기대감..

그런데, 간혹 이런 느낌도 온다.

온몸을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안감...

 

내가 써 볼 몇가지의 것들은 공황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사전적, 의학적 의미로 따지자면 그렇다. 하지만 그냥, 내 나름대로는 일반적인 의미의 "패닉상태"에 빠짐을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 오늘 심한 패닉상태에 빠져, 여러가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근래에는 정말, 혼자 있게 되어서인지 일반적인 상상은 거의 한정되게 되었다.

다만... "패닉" 스러운(?) 생각들은 늘어난 것 같다. 매우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서론이 길었나? 후후;;

 


 

4월 29일 오후 9시 : 거의 12시간을 연속으로 공부하다 도저히 머릿속에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눈을 조금 붙이고 하는게 어떨까 싶어서 자리에 누웠다. 딱 3시간만 자기로 생각하고, 내 낡은 핸드폰에 알람을 맞춰뒀다.

4월 29일 오후 9시 50분 : 한참을 뒤척이다가 잠이 오는 그 순간을 포착해서 잠이 들었던것 같다. 50분쯤에 교수님의 전화 한통에 선잠을 깨게 되었다. 몇가지 대화를 한 다음, 다시 누웠다.

4월 29일 오후 10시 5분 : 뒤척인다. 희미하게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창밖의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스스로의 청각이 무척이나 예민해짐을 느꼈다.

4월 29일 오후 10시 15분: 모든 창문을 닫는다. 아기 울음소리가 조금 줄어들었다. "으앙" 하고 악을 쓰며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정말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30분이 넘어서야 겨우 잠에 들었던 것 같다.

4월 29일 오후 11시 55분: 유감스럽게도 폰의 알람이 12시 정각에 맞춰지지 않는다. 몸을 비틀며 깨어났다. 여전히 아기 울음소리는 들렸던 것 같다. 시험을 대비해 시험지를 보기 시작한다.

4월 30일 오전 3시 00분 : 잠이 온다. 전날 3시간 잔 것 때문일까? 아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슨 꿈을 꾸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5시까지 자기로 했다.

4월 30일 오전 5시 30분 : 약간 늦잠을 잤다. 밖에서는 닭 우는 소리 비슷한게 들린다. 하지만 여기는 도시라서 닭을 키우지 않는다. 닭소리가 약간 이상하다. 전형적인 소리가 아닌, 왠지 말라 비틀어진 목을 가진 닭이 힘을 짜내서 우는 것 같이 들린다.

4월 30일 오전 7시 50분 : 여전히 닭 우는 소리는 들리고, 아침 일찍부터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엔 이상하다는 생각보다는 "어느 집에서 이러는지" 알고 싶었다. 아이의 투정에 대해 무지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순간적.. 일지도 모르는)

4월 30일 오전 11시 00분: 시험을 치는 도중, 어느 누군가의 폰의 진동소리. 3분간격으로 조용하지만 바쁜 교실의 분위기를 흐트린다. 벨이 울릴때마다 고개를 돌려본다. 마침 내 옆자리에서 그 소리가 난다. 누구 폰인지 몰라도 구박좀 줘야겠다고 생각했다.(마침 내가 싫어하는 사람 자리 근처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4월 30일 오전 11시 40분: 시험을 끝내고, 모 학형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지하철 앞까지 바래다준 후,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무척 더운 날씨고, 시험도 친 후라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골목길에서 차가 갑자기 나온 적이 있어 당황했었기 때문에, 좌우를 조심히 살피며 인도에 난 자전거 전용도로로 조심스럽게 자전거를 몰고 간다.

4월 30일 오전 11시 45분: 집앞. 골목길에서 차가 느린 속도로 나온다. 사각지대에 있어서 잘 볼 수 없었다. 브레이크를 잡으면 되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차와 살짝 박았다. 손으로 차 범퍼를 탁~! 치는 정도의 소리가 났다. 창문이 열렸다. 아저씨가 고함지른다. "야!" "야!!"

부끄럽지만, 나는 도망갔다. 순간의 이성적 판단에,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았고 아무런 손상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괜한 시비에 말려들기 싫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자전거의 방향을 유지한 채 자동차 옆을 지나갔다. 뒤에서 아저씨의 "야!!!" 소리가 들려온다. 온 힘을 다해 자전거를 몬다. 후진 골목길을 찾았다. 그 속으로 자전거를 몰고들어가 주택가 옆에 자전거를 세웠다. 도로에서 보이지 않도록.. 주택가 창문에는 어떤 여인의 전화소리가 들린다.

4월 30일 오전 11시 47분: 가슴이 뛴다. 호흡이 가빠지고 왼쪽 갈비뼈 아래쪽의 배가 아프다. 허혈성 복통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밥먹고 뛰면 배아픈 기전) 그 아저씨가 부딪친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어느정도 기다려 그쪽으로 살살 가본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서 가방속에 넣었다. 자전거는 세워놓고 몸만 움직여 차가 있나없나 살펴본다.

4월 30일 오전 11시 50분: 차는 없고, 주위에 아무도 없다. 세워둔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고 집안으로 자전거를 몰아 들어간다. 무지 배가 아프다. 집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공적인 일로 전화해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뽑아서 집을 나왔다.

4월 30일 오후 12시 20분: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옆사람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배가 아팠다. 최대한 다른쪽에 신경을 쏟았다.

4월 30일 오후 12시 28분: 버스정류장에 도착, 12시 50분 표를 끊었다. 혹시 배가 고파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서, 빵 하나와 음료수 하나를 사온다. 그리고 먹는다.

4월 30일 오후 1시 20분 : 버스 안에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를 한다.

4월 30일 오후 2시 10분 : 목적지에 도착했다. 친구와 만나서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한다.

4월 30일 오후 4시 00분 : 친구와 식사후 시내를 돌아다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머리를 깎았다.

4월 30일 오후 5시 10분 : 머리를 깎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 내 앞에는 두 사람이 머리를 깎고 있었고,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초조하게, 조금은 수그러든 배를 잡고 조용히 기다리다가 머리를 깎고 올라왔다.

4월 30일 ....

우황청심환을 하나 먹었다.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한 순간,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분이 들었다.

몸 상태도 정말 나쁘고, 기분도 나빴다. 무지 불안했다.

불안함의 이유를 추정해보았다. 시험? 사고? 공적인 연락?

삶의 일부를 이렇게 조금만 신경써서 보면.. 불안할 수 있는 요인들 천지다.

하지만 이렇게 심한 불안감을 느껴본 적은 잘 없고, 또 무슨 "징조" 인가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뒷끝이 찝찝하게 남는 어떤 느낌...

앞으로 무슨 나쁜 일이 있을지 않을까라는 느낌...

상상이 아니다. 실제로 겪어본 나의 "패닉" 상태는 이렇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흐리멍텅하고 침침한 눈으로 오늘의 일과를 써내려간다.

내일이면 풀리겠지, 잠들고 나면 잊혀지겠지.. 라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왠지, 오늘은 악몽을 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단순하게 보면, 조금 "재수" 없었던 날이지만...

처한 나 해석으로는.. 무슨 일이 있기 전의 적막감, 그 불안감이 느껴지는 듯 해서...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도 없었고, 아무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스스로, "액땜한거야", "괜찮을꺼야" 라고 생각할 수 밖에.

눕지 못하고, 편히 앉지 못하는 이 상태... 불안해서 무언가를 해야하는, 마무리 지어야 하는 상태...  내게 패닉은 이런게 아닐까 싶다.

여러분들의 삶, 일부를 뜯어서 분석해보라.

왜 지금 불안한 느낌이 드는걸까?

난... 잘 모르겠다.

그것을 안다고 해서... 내 불안이 해소될까?

그저.. 시간이 지남으로, 내 기억이 이러한 느낌들을 지워줄때 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2호] Gender & Sex (성) - Type purple 2005.06.08 23:32




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성"에 대해 써 볼 시간.

써 보고 싶었던 주제고... 솔직히 말하면 이걸 쓰기 위해서.. "상상" 이라는 테마를 붙였을 정도로 이 주제는 내게 있어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이다. 마음같아선 소설같이 써보고 싶지만, 내 필력이 거의 없는(-_-) 관계로.. 그냥 서술식으로 끌적여보려고 한다.

 

내가 화두에 담고 싶은 건.. 다름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성, 그 중에서도... 서로의 성이 바뀌는 것에 대한 상상이다.

생식의학이라는 과목에서, 남녀의 성에 대한 기형(Anomaly)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반음양(hermaphroiditism)이라는 것이 나온다.

쉽게 말하자면, 남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 여자가 되는 것이고, 여자임에 분명한 사람이 남자의 성기를 가지고 있는... 좀 "특이한" 질환이라고 하겠다.

유전적으로는 분명히 남자임에 틀림없는데도... 여성의 모든 특징(여성의 성기라던가, 유방을 가지고 있는..)을 가진 남자. 유전적으로는 여성임에도, 남성의 성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 혹은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모두 다 가지고 있는 사람...

이 흥미로운 테마는... 예전에도 꽤 유명하고 신기한 이야깃거리였나보다.

"사방지" 라는, 남성의 성기와 여성의 성기를 모두 가진 여인(?) 이 어느 양반집 규수와 마음과 몸(?)이 맞아 그 시대에 커다란 감흥(센세이션;;;) 을 일으킨 사건.. 등등.. 꽤 많았던 것 같다.

 

내가 좀 더 주목하고 싶은건, 그리고 흥미로움을 가지고 싶은건.. 솔직히 말하면 이런 건 아니다. 이보다는.. 좀 더 마법적이고, 신비한 생각.. 이라고 하면 되려나? ^^;

남자가 여자로 바뀐다는 것.

다만, 남자일때의 기억, 습관, 모든것을 가지고.. 여자로 바뀌게 되는 그런 상상.

이런 설정을 응용한 여러 가지 만화나.. 영화도 있었다. (Change라는 한국 영화나, 란마 1/2 같은 유명한 만화도 있다.)

난 이상 성욕자나... 게이, 트랜스젠더는 절대 아니다. -_-;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어떤 마법이 있다면, 여자라는 존재가 되어보고 싶다.

 

만약 내가 여자가 된다면... 지금 내가 가진 "마음" 이라든지, 어떤 생활 태도라든지... 심지어는 심성까지 바뀌게 될까? 아니면 나는 지금 그대로의 나로 남아 있게 될까?

내게 있어서 여자라는 존재는.. 단순한 "사람" 이라는 의미와, 한 편에서는 "신비한" 의미를 지닌다. 2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정확히 말하면 내가 좀 서글퍼지고 =_=) 내 스스로는 여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조금 고민도 해봤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관찰해봤다. (건방진건가;)

어느 정도.. 는 공감할 만한 점을 찾아냈지만, 지금도 여전히 "여자"는 신기한 존재이고, 다가가기 힘든 존재이다. 만일 내가 여자(정확히 말하면 여성의 몸과, 그 상황속에 존재하는 것)가 된다면 그런.. 어떤 "존재감"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예를 든다면...

 

어떠한 마법적인, 신비한 이유로.. 하루아침에 나란 사람(남자)가 완벽한 기능을 가진 여성의 몸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어떤 상황이라던가,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나"를 알아본다는 가정 하에서 - 남자의 용모로.. 여자가 된다면 조금 땅을 치게 될 일이 생길것 같다 [쿨럭] - 나는 내가 다니는 학교에 간다.

신체적인 차이. 남자의 편평한 가슴과 여자의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큰 가슴. 이용해야 할 화장실의 차이. 단순한 이런 신체적인 차이만으로도 나는 상당히 놀랄 것 같다. 내가 이제껏 쓰던 몸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의 몸을 가진다는 것은 너무 신나고.. 재미있을 것 같다.

언제나 가지고 있게 될 몸이니.. 그 흥미는 조금 떨어진다고 치자.

그 다음엔 나를 둘러싼 사람간의 관계에 대한 변화.

내가 스스로가 [여자]가 되었음을 숨기지 않는다면, 나를 알던 친구들, 지인들은 어떻게 나를 대하게 될까? 분명 남자대 남자이기 때문에 평등하고 진실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런 경우가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남자대 여자로서의 관계에서는.. 그 관계가 어떻게 변하게 될까?

그렇게 지내던..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아니면 다른 관계로 발전하려나.. (이건 여자로 변한 그 자신의 태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지?)

친하게 지내지 않던, 다른 여학우들과는 어떻게 지내게 될까?

남자일때 그들을 보던 시선과, 그들이 나에게 대해주던 어떤 태도.

내가 여자로 바뀌고나서, 그들이 나를 보게 될 시선과 태도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내가 처하게 될, 사회적인 위협도 달라지겠지?

남자일땐 밤길을 아무 걱정없이 다녔는데. 여자가 되면 또 달라지겠지?

여자가 된다면, 내 시선에서 보이는.. 여성적인 섬세함을 내가 가질 수 있게 될까?

정말 이런 "차이"가 호르몬에 의한.. 그런것에 불과한 것일까?

 

단순한 화학 물질 하나에, 이렇게 "영혼"마져 다른 색을 지닌다는 것은.. 너무 허무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향수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영혼의 빛깔이 바뀐다는 것은 심히 인간이 "단순"하게 될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하나의 모험이랄까?

어떤 희생을 감수.. 하고서라도 이런 경험을 해보면 정말 즐거울 것 같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하고... 가능하더라 하더라도, 내 몸에 칼을대는것은 절대 사양하기 때문에... 가끔씩 찾아오는 내 꿈의 기차에.. 이런 꿈이 실려있어, 가끔씩 꿈에서나마 이런 상황을 스스로 꾸며 만들어 내어 즐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뭔가 좀 더 구체화 하고 싶지만...

역시 이런 이야기는 이런 사설, 잡담보다는...

좀 더 실제적인 "픽션" 속에 들어가서, 풍부하게 다른 이의 상상력을 만족해줬으면 좋겠다.

 

정말 언제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마음을 먹게 된다면..

이것에 대한 픽션을 꼭 써보리라...

 

자신과는 다른 존재에 대한.. 동경이랄까?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기대할 것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다른 내가 되어보고 싶고, 나와는 다른 존재를 이해해보고 싶다. ^-^

왠지 횡설수설하고.. 말주변 없는 페이퍼가 되었나? ^^; 간만에 쓰는건데.. ㅠ_ㅠ

[13호] Man's Ring (남자의 반지) - Type Chrome 2005.10.04 02:01



너무 오랜만에 잡아보는 펜이다.
계속 써야지.. 라고 생각하고 결심도 했지만.. 결국 귀찮음 때문에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오늘은 기필코 쓰겠다는 마음으로 키보드를 잡는ㅋ.
주제는 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남자의 "반지" 에 대한 것이다.
참고로 좌측의 반지는 ChromeHeart 라는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나오는 분위기의 꽤 멋진 장신구이다. (http://www.boytoman.co.kr)

 

자.. 그럼 본론으로..

 

 


 사람의 손을 유난히 살펴보는 습관은 없지만, 내 눈은 꽤 자주 다른 이의 손으로 가게 된다. 내가 가진 어떤 심리적인 의미 때문일까? 과거엔 그 사람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가에 더 촛점을 두고 보았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사람의 손을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그 사람의 손에 끼여진 반지이다. 물론 일반화될 수 없는 논제이긴 하지만, 적어도 나의 시선에서는 사실이다.

 

 각양 각색의 반지. 보석이 많이 박힌 반지도 있는 반면, 아주 심플한, 아무 문양이나 장식 없는 반지도 꽤 많이 보아왔다. 중지에 끼워진 반지, 약지에 끼워진 반지. 심지어는 엄지(-_-;)에 끼워진 반지도 본 적이 있다. 커플링으로 보이는 어떤 반지 둘, 시선을 올려보면 사이좋게 길을 걷고 있는 남녀 한쌍..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가을이 왔구나' 라는 느낌이 든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반지는 남자가 낀 반지이다. 여성에 비해 꽤 굵은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여성의 반지에 비해서 꽤 크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반지. 반지를 보면서, 그 사람의 얼굴, 그 사람의 분위기를 살펴 본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일까? 반지의 연인은 어떤 사람일까?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일까?

 

 공통점이 있을까?

 

 반지를 끼고 있는 사람은 분명 한 둘이 아닐 것이고, 그들은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인데... 나는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것인가라고 생각해보았다. 고심하진 않았지만 꽤 오랜 기간동안 조용하게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얻어낸 결론은...

 반지를 낀 그 남성은 반지가 여성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다"라는 것과 (퍽퍽)

 약지에 끼워진 반지는 그 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뭐랄까...

 그런 반지를 보고 있자면, 그 사람의 어떤 추억을 엿보고 싶어진다.

 분명 아무런 이벤트 없이, 아무런 감흥이나 추억 없이 그 반지를 가지게 되진 않았겠지.

 만약 커플링을 준비했었다면 그 반지를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을 그런 모습들이 있었겠지.

 넉넉치 않은 용돈을 모아 반지 한 쌍을 사서, 연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기대하고 있는 모습.

 결혼식때 식장 안에서 평생의 반려자와 서로 맞교환하던 반지.

 아무런 사연 없이 끼워진 반지보다는, 어떤 약속과 징표의 역할을 하는 반지...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그리고 상상하면서 나는 어떤 '부러운' 감정을 느낀다.

 허전한 내 약지를 바라보면서 한숨 지어본 적도 있었다. [-_-ㅋ]

 

 믿음을 배신한 연인 때문에...

 손에 끼워져 있던 반지를 빼어 소주병으로 내리치던 어떤 사람.

 내 기억속 어떤 풍경.

 

 반지를 사기 위해 귀금속점을 기웃거리던 그와 그녀.

 커플링을 맞추러 왔냐는 점원의 질문에 애써 그 상황을 부정하던 그들. 그녀의 표정엔 난감함이, 그의 표정엔 못내 아쉬움이 드러난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그녀가 맘에 들어하는 반지를 찾아내고, 그는 그 반지를 선물한다. 그녀의 미소... 그는 손가락의 허전한 느낌을 감추기 위해 주먹을 꽉 쥐고 그녀를 보고 씨익 웃는다. 그녀의 미소 만으로도 마음의 허전함은 채울 수 있었지만.. 끝내 손가락의 허전함을 채울 수는 없었다.

 

 

 커플링 = 짝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의미일까?

 단어 자체에 그러한 의미가 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좀 더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 고민의 결론은 다음 식으로 끝맺음이 났다.

 

 

 남자의 반지 = 용기

 

 뭐,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의미이며 나의 시선에서 바라본 의미이기에, 이 세상에 많은 삶이 있는 만큼 내 시선이 적용될 범위도 한정적일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무엇.

 내가 그 무엇을 가질 수 없는 이유..

 다른 이에게는 있을 것 같은 어떤 것...

 

 용기...

 

 몇년 전만 해도, 그런 의미의 용기에 나는 웃음을 지었었다.

 그 용기에 대해 평가하고, 감동할 만한 생각과 경험이 내겐 없었던 것일까?

 분명 누군가에게 고백하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며, 책임감이 뒤따른다.

 그 말 한마디에 이제껏 쌓아온 좋은 관계를 무너트리지 않을까라는 걱정.

 언젠가는 다른 이를 만날 것이라는, 다른 이에게 고백 받으리라는 생각.

 

 하지만, 내가 이렇게 힘든데, 나는 이렇게 용기가 필요한데, 이렇게나 책임감을 느끼는데...

 자신에게 용기있는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어떨까? 그 사람의 입장은, 그 사람의 생각은..

 

 나는 아직 사나이가 아니다.

 누군가를 좋아할만한 자격을 갖추지도 못했고..

 아직도 용기를 가지고 어떤 말, 어떤 일을 해낼 만큼 자신에게 확신도 가지지 못했다.

 

 다만 다른 누군가의 반지를 보면서, 아무 생각없이 부러워하기만 했었다.

 

 한 번의 상처가 나를 더 힘들게 했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이것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년 전의 내 모습보다, 지금의 나는 강해졌고, 커다란 산을 하나 넘었다.

 좀 더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나의 행동이 어떤 의미를 지녔나 냉정히 생각해 볼수도 있게 되었다. 그 당시의 내게는 반지를 지닐 자격은 없었던 것 같다. (^^)

 

 이제 지금은 잘 모르겠다.

 용기 내는 것의 의미. 누군가를 지켜주겠다는 마음. 타인을 생각하는 에너지.

 한동안 나 자신으로 돌렸었고, 충분히 나 자신을 사랑해주었다.

 내가 언젠가 반지를 낄 수 있는 자격을 지니게 된다면 - 난 이 날이 이제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인정할 수 있는 자신의 자격이라는 의미에서...

 

 이젠 그 반지, 내 마음에 맹세를 하고...

 그 용기의 의미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더 이상 스스로를 파괴할 마음이 들지 않도록..

 내 주위 사람을 지켜줄 서약을 하겠다.

 

 조금 더 나를 갈고 닦자.

 지금의 내가 아직 때가 덜 벗겨진 낡은 금속덩어리일지라도..

 난 언젠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멋진 조각으로, 멋진 반지로 태어나..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PS. 멋으로 끼는 반지.. 라면 할 말이 없죠 ㅋ 그치만 왠지 저는 그냥 멋으로 끼고 다니는 반지는 왠지 처량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단순한 악세사리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반지는 정말 어떤 특별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